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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독요리 복어로 유명한 일본 죠슈번 시모노세키와 이토 히로부미


맹독 속 궁극의 맛 복어(河豚ふぐ)와 사무라이

일본어로 복어는 한자로 ‘河豚’이라 쓰고 ‘후구’(ふぐ)라고 읽는다. 강에 서식하는 돼지(河豚)로 표기한 것은 중국유래다. 중국어로는 허툰(河豚hetun)이라 하는데 산란기에 강으로 오는 황복을 의미하며 배를 부풀리고 우는 것이 돼지 같다고 해서 유래한 것이다. 

서일본에서는 후구(ふぐ)가 불우(不遇)와 발음이 같아 일부러 복(福)의 발음인 후쿠(ふく)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복어의 불우한 그림자를 복(福)되도록 한 인물이 있다. 일본 메이지시대 초대내각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다. 이 전에는 복(河豚ふぐ)을 법으로 금지시킨 상태였는데 이를 허가한 이가 이토다. 

일본에서 복어요리의 전통은 죠몽시대(縄文時代)부터 시작됐다. 당시의 패총에서 복어가 발견된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듯이 복어는 맹독성 물질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 있어 아주 위험하다.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1천배에 달하는 신경성 독극물로 0.5mg에서 1mg만 섭취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복어가 맛은 있지만 조리를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일찍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위정자들이 복어금지령을 내렸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조선침략을 준비하던 병사들이 복어섭취로 자주 사망하자 복어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에도시대에도 복을 먹고 중독사하는 것은 무사에게 불명예로 여겨져 금지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은근히 목숨을 걸고 먹는 애호가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사도 때로는 담력을 과시하기 위해 먹기도 했다. 

“위험하니 먹으면 안 된다”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안먹느냐”의 은근한 논쟁도 있었다. 일찍이 하이쿠의 명인으로 50세에 복어를 먹고 그 맛에 매료된 코바야시 잇사(小林一茶 こばやし いっさ)는 “복어를 먹지 않는 놈은 보지 못하는 후지산”(河豚食わぬ奴には見せな不二の山)이라는 구절로 복어가 겁나 먹지 못하면 후지산을 볼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노래했다.

반면 메이지 지사들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의 복어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不食河豚説)는 그 반대 입장으로 유명하다. 이토 히로부미와 타카스기 신사쿠등의 스승으로 극단적인 금욕을 추구했단 요시다 쇼인은 절대로 복어를 먹지 않았다. 

그는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사 된 자가 복의 독으로 죽는 것은 수치로, 실로 불명예스러운 것이다(死ぬことは怖くないが、士たるものが、ふぐの毒で死んでは恥であり、実に不名誉なことだ)라고 했다. 또 복어섭취를 아편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청나라에서 아편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인데 그는 복어는 아편처럼 맛있는 만큼 독(毒)도 깊다. 유혹에 넘어가 독을 좋아하는 자는 아편이 일본에 수입되면 좋아서 죽을 자다라고까지 하면서 복어를 거부했다. 

그러나 정작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움직이면 뇌전과 같고 발동하면 비바람 같다”(動けば雷電の如く 発すれば風雨の如し)는 헌창시로 칭송했던 동료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와 함께 젊은 시절 복어를 은근히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에서 무사들도 복어를 나베로 즐기기도 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공식적으로 복어는 금단의 음식이었고 이토가 그 족쇄를 풀었다.

1888년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는 슌판로(春帆楼)라고 하는 요정 겸 여관에서 머물렀다. 이토가 들른 날은 풍랑으로 인해 마땅히 내놓을 생선이 없었다. 그런데 여주인이 임시방편으로 복어요리를 내놓았다. 이토는 무슨 어종인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은 뒤 여주인에게 물어보니 복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토는 “독으로 죽을 수도 있어 금지령을 내린 생선인데 괜찮은가” 라고 하자 여주인은 제대로 조리하면 이상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토는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타깝다면서 야마구치현 지사에게 명령해 복어금지를 풀라고 지시했다. 

이런 에피소드와 관련해 복어의 맛을 알고 있는 이토가 일부러 모른척하고 먹은 뒤 여주인을 센스있게 칭찬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로서 슌판로는 일본최초의 복어 관허점(官許店)이 됐고 처음에는 야마구치현과 후쿠오카현에 한해 처음으로 복어금지령을 해제한다, 이후 일본 전역으로 복요리가 확산되면서 도도부현 (都道府県)마다 복어조리사 면허시험이 실시된다. 

 슌판로(春帆楼)는 1895년 일청강화회의의 역사적 장소로도 유명해진다. 당초 나가사키나 히로시마도 회의개최지 물망에 올랐지만 이토는 청나라 사절단에 일본해군의 위용을 과시하기 적절한 시모노세키를 개최도시로 정하고 회담장소를 슌판로로 확정한다. 

복어(河豚ふぐ)는 과거 숱한 메이지 지사를 배출한 쬬슈번(長州藩 오늘날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를 상징하는 어종이다. 맹독을 품고 있어 먹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여러 역사적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는 복어는 카라아게(唐揚げ), 나베(鍋)는 물론 얇게 뜬 사시미로도 즐긴다. 특히 투명하도록 얇은 사시미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메뉴들은 정교한 나전칠기를 연상케 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